이번 호에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와 관련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 는 주제로 7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서울의 서강대에서 열린 제16차 대회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었다.

그런 역사적 의의가 큰 만큼 우려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큰 관심을 받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것인가? 또 하나의 걱정은 과연 대회를 무탈하게, 더 나아가 어떤 성과를 내면서 잘 마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몇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그 몇 가지 요인을 나누어서 살펴보자면 우선 6월 초에 있었던 스위스 국민투표라는 사건을 들 수 있다. 비록 투표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스위스 국민투표는 기본소득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삼으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 만한 일이었다. 또 다른 사건을 들자면 스위스 국민투표 몇 달 전에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었다. 이 일을 성사시킨 행위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후일 ‘세기의 대결’로 기록될 이 사건은 기술 발전을 언제나 맹신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 충격이란 인간이 성취한 기술 발전의 수준에서 온 게 아니라 그것이 미칠 파장, 즉 일자리 없는 세상이라는 비관적 전망에서 온 것이었다. 최소한 이데올로기적으로 노동과 소득을 강하게 연계시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소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짐작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가 ‘사건’이었다면 좀 더 긴 시간대의 ‘정세’ 라는 게 있다. 이 정세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듯이 2008년 경제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 사건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영 방식, 즉 시장 지상주의와 금융화가 분명 신뢰를 잃었고, 주된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따라서 교체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은행 구제를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고, 그 부담은 긴축 속에서 책임이 없는 사람들 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물론 이런 파렴치함에 맞서 2011년부터 대중의 저항이 일어났고, 최소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이런 힘이 이후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역관계의 변화가 크게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변화를 위한 균열들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균열 속에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긴급한 대응,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소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 자동화에 대응하는 인간적인 삶의 추구 등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근거이자 전망이다.

하지만 여러 요인이 겹친다고 해서 어떤 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더라도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 그것도 상당한 노고가 필요하다. 100명이 넘는 발표자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공동 조직위원장들, 집행위원들, 자원활동가들, 관계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 모두의 노고가 흘러넘치고 녹아들어 대회가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덜 중요해서 끝은 아니지만, 끝으로 대회에 참가하여 우정과 용기를 나눈 모든 분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어쨌든 이번 대회를 계기로 기본소득의 판이 커진 느낌이다. 판이 커진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이 끼어들어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긍정적인 방향이 설정되는 것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저 불협화음만 낼 수도 있으며, 이도 저도 아니면 그로테스크한 변형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또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당연히 이는 기성의 질서, 역관계, 해당 사회의 문화 등의 프리즘을 통과해야 하고, 구체적인 실현의 경로와 제도를 찾아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을까? 공유와 자유를 체현하는 기본소득을 추구한 우리가 온전하게 그런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적대적이었던 사람들까지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낸 계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온전하게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계기를 발견하거나 구성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언제나 끝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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