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 쎄

증오 사회와 《 부산행》

/ 박기순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1. 강남‘ 묻지 마’ 살인 사건

지난 5월에 강남에 위치한 한 건물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직장 여성이 34세의 남성 김 모 씨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특별히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이 극단적인 행위에 어떤 특정한 이유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은 이른바 ‘묻지 마 살인’이었다. 이 남성은 피해자와 어떤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그 여성을 살해할 특별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피해자가 살해를 당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히 그 시간에 그 화장실에 갔다는 사실이다. 살인이라는 ‘의지적인’ 행위를 아무런 ‘이유 없이’ 행하는 것, 강남 살인 사건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 역설이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는 바로 이 사실에서부터 나온다. 그 행위가 특별한 이유나 동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든 행위의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그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종종 예기치 않게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말하자면‘ 사고’다. 실수에 의해서, 혹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교통사고가 그렇고 천재지변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한 사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는 한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일, 혹은 그러한 부주의나 실수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마저도 잊게 되며 그래서 때로는 부주의한 행동을 하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그것은 이러한 종류의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누군가를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더욱이 그러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누구든 될 수 있다면, 그 누군가가 직장 동료일 수도 있고 옆을 지나가는 행인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가족이 될 수도 있다면, 그것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나게 된 예외적인 사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사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공포와 우려를 가져올 수 있다.

강남 살인 사건의 경우 그것은 정신 질환에 의해 유발된 것이므로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는 김 모 씨의 범행을 정신 질환인 조현병schizophrenia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신 질환을 앓은 이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실제로 그 정신 질환이 그러한 행위에 일정 부분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오직 그것만으로 그의 폭력적 행위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일부 범죄 전문가나 학자는 그의 행위를‘ 여성 혐오’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피의자는 사전에 범행을 의도했을 때 화장실에 들어오는 최초의 여성을 상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범행을 계획한 대상이 여성이라고 해서 그의 범죄가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가 범행 동기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진술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직 여자들만이 그를 무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특히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그가 여성을 암묵적으로 약자로서, 즉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무시할 수 있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혹은 존중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적 존재의 상징으로서의 여성이다.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그는 여성으로부터 모멸 당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이며, 또한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그는 범행의 대상으로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폭력의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노인, 어린아이, 혹은 그 밖의 다른 사회적 약자들일 수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종류의 폭력은 특정한 동기나 원인을 갖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대상도 갖지 않는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의도는 복수를 위한 것도, 정의를 위한 것도,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정확히 말해서 그 의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의지, 파괴와 죽음의 의지다. 이 의지는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가장 약한 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남 살인 사건이 어떤 증오에서 기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특수한 유형의 폭력을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이 증오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있다. 앞에서 논의한 것에 기초해서 볼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그의 증오는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피해자 여성도, 그리고 그가 만난 다른 여성들도 그의 증오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증오는 특정한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둘째, 첫 번째 이유에서 그의 증오는 잔혹성을 띠게 된다. 이때 잔혹성이란 그 결과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잔혹성은 그 행위가 일말의 이해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서 나온다. 질투에 눈이 멀어서 혹은 경멸을 참을 수 없어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거기에는 일말의 이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우리는 그것을 잔혹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요컨대, 잔혹성은 파괴성의 정도가 아니라 이해 가능성의 정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묻지 마’ 폭력은 본성상 잔혹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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