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_ 게이트와 그 후

광장민주주의의 귀환, 87년 체제의 축제,
이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 금민 편집위원장

11월 26일 토요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190만 명이 참여했다. 건국 후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1987년 6월항쟁으로 ‘87년 체제’를 탄생시켰던 광장민주주의가 귀환했다. 1987년과는 달리, 또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으로 끝난 1년 전 민중총궐기와도 달리,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는 철저히 평화적으로이루어졌다. 살수차 없는 경찰, 행진로를 열어 주는 법원, 경찰차벽에 꽃무늬 스티커 붙이기, 시위대와 경찰의 포옹, 누구나 알 만한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총집결한 문화행사 등이 집회의 평화적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그런데 사실 이 점은 경탄할 만한 일도 아니며 대단히 예외적인 일도 아니다. 국가권력의 입장에서도, 시위 대중의 입장에서도 박근혜 퇴진 집회는 평화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제1야당 대표의 입에서 계엄령이 선포될지 모른다는 말이 나왔지만 집회에 참여한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 후 역사를 1987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은밀한 쿠데타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지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은밀한 쿠데타의 핵심 주역들은 ‘국정 농단’ 세력으로 여론의 심판을 받았다. 그토록 은밀하게 쿠데타를 진행했던 이유가 계엄령과 같은 노골적인 쿠데타를 감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보수 언론의 뭇매를 맞고 검찰 수사를 거치면서 최저점에 도달한 권력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1야당 대표의 말은 촛불집회에 1987년 6월항쟁과 같은 장엄한 서사의 분칠을 하려는 것일지 모르지만 시위 대중들은 이를 우스갯소리로 치부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99%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은 폭력 진압을 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폴리스 라인은 내자동 로터리와 같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박근혜 퇴진이라는 정치적 개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촛불집회에 대해 국가권력이 설정한 폴리스 라인은 박근혜 퇴진이고, 권력을 누리던 새누리당과 권력을 획득하려는 야당들의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겠지만 어떤 절차를 거치든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력이 설정한 폴리스 라인이 박근혜의 퇴진까지라는 점이 여기에서 매우 중요하다.

– 이후 생략된 전체 글은 PDF파일을 다운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44호_광장민주주의의 귀환, 87년 체제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