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 사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지나간 시대

/ 안효상 편집주간

시간이 포고령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을 포고령으로 삼고 싶은 인간이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반복되지 않는 개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롱했던 젊은 날은 지나가고 필멸이 다가온다. 20세기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찬란했던 시절이든 아니면 그 끝자락이든 어쨌든 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유하게는, 한 시대를 ‘체현’한 그 인격과 함께 그 시대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1926년 8월 13일에 쿠바 오리엔테 주의 비란에서 부유한 스페인계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쿠바혁명을 이끌고 2008년 국가평의회의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한 피델카스트로도 다른 수많은 위대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자식이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는 19세기 말,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고 결국 독립을 얻었지만 여기에 끼어든 미국에 의해 사실상 지배당하는 땅이 되었다. 쿠바의 젖줄인 설탕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당했고, 침묵하기를 거부했던 노예들의 목소리에서 나온 쿠바의 문화는 관광객의 소비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 체제는 여느 형식상의 독립국가와 마찬가지였고, 이는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라 불리게 될 나라와 지역의 발흥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편적 해방을 주장한 공산주의 진영이 성립했고, 다른 한편으로 직접적인 정치적, 군사적 지배의 제국주의는 존속하기 어려웠다. 이는 냉전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 질서의 재편을 가져왔지만, 흔히 경제적, 문화적 지배라고 하는 신식민주의적, 포스트식민주의적 상황은 지속되었다. 사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아메리카에서는 익숙한 상황이었고, 쿠바의 독립이 쿠바의 종속과 사실상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급진적인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인 카스트로는 165명의 전사들과 함께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는 무장투쟁을 벌인다. 이는 소수의 무장봉기를 통해 혁명의 불꽃을 지핀다는 호세 마르티의 혁명 전통에 따른 것이다. 카스트로는 몬카다 병영 공격을 앞두고 그 의의를 이렇게 말한다.

몇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은 승리하거나 아니면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하든 …… 이 운동은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 승리한다면 마르티의 영감이 금세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은 쿠바 민중에게 모범이 될 것이고, 민중 속에서 쿠바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쿠바혁명을 위한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 카스트로는 이 사건의 주모자로 군사재판을 받아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론한 카스트로는 후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네 시간에 걸친 발언에서 우선적으로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카스트로는 자신의 죄목인 “국가의 헌법적 권한에 대해 무장봉기를 조직했다”는 것에 대해 반헌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바티스타에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발언에는 이후 혁명의 강령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요구가 담겨 있다. 1940년 쿠바 헌법의 회복, 농지개혁, 회사 이윤의 30퍼센트를 가질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 회사 이윤의 55퍼센트를 가질 수 있는 설탕 노동자의 권리, 이전 행정부에서 사기죄를 범한 사람들의 재산 몰수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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