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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탄핵되고 청와대를 비웠다고 해서 사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당장의 관심은 박근혜 씨를 구속하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다.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에는 이미 결말이 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라는 대중의 어마어마한 진출 속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분명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과 측근의 국정 농단이라는 사태가 있고, 이것이 대중적으로 폭로되었으며, 여기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이는 하야 혹은 탄핵이라는 요구로 나아갔다. 물론 하야와 탄핵은 다른 궤적을 낳았을 것이다. 후자는 기성의 헌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전자는 정치적 지위로서 법적 질서의 균열 혹은 그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이후의 절차도 그만큼 다르다. 탄핵은 기존 절차를 고스란히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질서의 변화도 없이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하야였다면 흔히 말하는 ‘거국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것이고, 이는 좀 더 개방적인 것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꼭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 또한 세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니 말이다. 촛불집회로 모인 대중의 힘이 하야나 탄핵 이상의 것으로도 발휘됐을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태의 먼 원인은 최소한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되는,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다. 더 밑바닥에는 대중의 물질적 불만이 놓여있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계기가 배신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할지라도 다양한 대중의 물질적 불만이 최소한 촛불집회 국면에서는 억제되었다는, 혹은 억제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번 사태의 한 가지 비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분히 돌아보면 다 아는 것이지만, 이번 사태는 보수파의 일종의 ‘보수 혁명’ 시도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은 이런 시도에 맞섬으로써 일종의 전前혁명을 수행한 셈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폭로에서 시작되었고, 이들의 구상에 따라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언론 분파의 합세가 있었다. 물론 음모론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치세력의 구상이 그 자체로 관철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이른바 상호작용 속에서 의도를 벗어나고 통제를 벗어난다. 그게 근대 대중 정치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작년 10월말 이후의 정치적 풍경은 최소한의 변화로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는 힘과 기성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넘어서려는 힘 사이의 충돌과 상호작용 속에서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탄핵이라는 헌법 질서의 수호로 일단락되었다. 박근혜 씨의 구속과 처벌은 이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인양은 다시금 우리에게 미해결의 과제가 있음을 아프게 보여 주고 있다.

탄핵으로 일단락된 이번 사태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가진 양면성을 보여 준다. 우리의 민주주의 헌법과 가치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국정 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거리로 나오도록 만들었다. 어쨌거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를 수용하고 거기에 법적 권위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경계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대중의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의해 말 그대로 억제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폭발하려면 현재로서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계기는 양방향에서 올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로 형성될 정치적 힘의 균형을 보수적인 쪽으로 돌리려는 이른바 냉전 보수 세력의 시도다. 다른 하나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을,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나빠질 대중의 삶이다. 이 속에서 한편으로 한국 정치에서 좌파가 처한 딜레마 상황이 다시 연출될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민중의 대변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황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는 전적으로 힘에 달려 있을 텐데, 여기서도 문제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기성 질서를 보호하는 힘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힘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또 다른 사태를 낳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이중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제도로서의 헌법을 수정하는 작업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헌은 정치 일정에 올라 있으며, 그 누구보다 냉전 보수 세력의 요구가 크다는 점에서 일정한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여기에 이른바 민중 세력이 어떤 요구를 가지고 들어설 것인가 혹은 의미 있는 행동이 가능한가가 문제다.

다른 하나는 이런 정치과정과 민중의 힘이 병행하고 교차하는 과정에서 기성의 정치계급을 넘어서는 정치세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다. 물론 이때 새로운 정치세력은 꼭 기성 정당 질서 외부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여러 힘은 기존 정당체제 외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거의 봉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용적으로 그런 세력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제도는 우리에게 언제나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중의 과제를 교차하는 게 아마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과정을 규제하는 법률의 개정 문제일 것이다. 이런 법률은 그 자체로는 그 누구의 요구도 대변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종류의 규제에 관한 것이다. 과연 여기로 대중의 힘을 향하게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아마 여기서 열쇠는 이른바 정권 교체라는 것으로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가 그 내부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 이 글은 제47호(2017년4월호) <책 머리에>이다.

47호_책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