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월간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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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2018

[제48호(2017년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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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시대 속의 좌파

박근혜 정권 탄생 직후에 만들어진 이 잡지가 “좌파”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은 이번으로 마지막이다. 문재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제호를 바꾸는 건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이라는 면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길게 보면 세계사적으로 좌파가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동쪽의 좌파는 꽤 오래 전에 자기 약속을 저버렸고, 서쪽의 좌파는 자기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1968년은 이런 좌파에 대한 매서운 채찍이었다. 그런 좌파가 유럽에서 부활한 것은 이미 좌파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을 들고 나온 다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좌파 왼쪽의 좌파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당장 의미 있는 세력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Read more

401, 2018

[제48호(2017년5월)] |시론| 최저임금 1만원, 구원인가 공포인가? / 최기원

■ 시론

최저임금 1만원, 구원인가 공포인가?

/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

알바노조가 제기한 최저임금 1만원, 유력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향한 시선은 다양하고 이 운동이 청년들에게 갖는 의미는 다층적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겠다. 여러 객관적인 조사들을 토대로 보면, 최저임금 1만원 등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는 이들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참여연대의 여론조사에서 최저임금 1만원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6%를 점했다. 2015년 양대 노총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63%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온라인 응답 수준의 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하여 전화 임의 추출 방식이나 비례 할당 추출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정 수준의 객관성을 갖고 있는 방식으로 시행된 것이다. 결정적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셈에 능한 정치인들이 이 정책이 적어도 광범위하게 지지를 얻는 대세임을 모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바노조가 거리에 나가 캠페인을 하면 상당수 시민들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불안정노동의 위협, 어처구니없는 마타도어,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이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의 근거와 당위성은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져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그런 내용은 다소간 줄이고 현재 최저임금 운동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읽고 운동의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최저임금 1만원, 구원인가 공포인가?

PART 1: 시선들

1. ‘받으면 좋긴 한데, 잘리면 어떡하지?’

다음 쪽에 나올 사진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기사에 달린 악플들이다. 이런 입장은 인건비가 고정된 것으로 전제한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두 명 쓸 알바를 한 명 쓴다는 뜻이다. 이는 현재의 저성장 국면에 대한 자각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이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업계의 현실 구조의 열악함과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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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의 인과 관계가 이론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실증 증거가 더 많다. 최저임금이 없었던 독일에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더니 오히려 실업률이 떨어지고 나쁜 일자리가 줄었다. 2016년 최저임금을 34% 올린 미국 포틀랜드 주에서도 실업이 늘지 않았고 물가도 오르지 않았다. 한국 현실과 다른 외국 이야기라고?

다음 쪽에 있는 표를 보자. 2010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인상률은 2.8%였다. 2007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2.7%로 2010년의 네 배였다. 2010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6%였으니, 2007년 물가 상승률은 그 4배인 12%쯤 되었을까? 오히려 2010년보다 더 낮은 2.53%였다. 실업률은 어떤가? 2010년은 전년에 비해 0.1% 올랐다. 2007년은 0.3% 떨어졌다. 이쯤 되면 최저임금이 실업이나 물가와 관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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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의 결과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고용 감소를 향하고 있는데 실제 경제가 돌아가는 양상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영세자영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563만 개인 사업자 중에서 404만 명은 고용하는 노동자가 없는 개인 사업자다(2016년 4분기 통계청 조사 결과). 둘째로 일자리는 인건비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인건비의 영향이 절대적이지 않다.

의외로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기존의 고용을 유지하게 되는 유인이 많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 숙련된 노동자를 다른 노동자로 바꾸었을 때 드는 추가 비용 문제, 경쟁 사업장들의 인건비도 함께 증가해서 상품 가격에 인건비를 반영하거나 이윤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기 쉽다는 점, 대체적으로 고용 감축은 사업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 놓는 반생산적인 옵션이라는 점이 그러한 유인으로 주요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요 상승 효과가 있고 이에 따라 추가적인 생산과 창업, 일자리의 확대가 기대되는 측면 역시 고려해야 한다.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위험하고 가치 창출이 낮고 오로지 인건비 절약에 의존하는 일자리는 줄어들고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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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호(2017년5월)] |논단| 공유부 배당의 논변 구조와 기본소득론의 사회상 / 금민

■ 논단

공유부 배당의 논변 구조와 기본소득론의 사회상

/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기본소득은 공유부共有副의 평등한 배당이다. 여기에서 ‘공유부wealth of commons’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공유지’ 또는 ‘공유’라는 개념이 특정한 소유 형태로 이해될 수 있고 ‘공동소유common ownership’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유부’라는 개념은 소유 형태와 무관하게 공동의 것으로 돌려야 할 수익을 뜻한다. 결국 공유부 배당이란 공동의 것으로 돌려야 할 수익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20세기 복지국가의 이전 지출transfer payment과 분명히 구별되는 기본소득의 고유한 원리를 표현한다. 20세기 복지국가의 복지 급여는 ‘기여의 원리’에 따른 사회보험과 ‘필요의 원리’에 따른 공공부조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사회보험이 빈곤 예방의 기능을 가진다면 사회부조는 사후적인 빈곤 구제 수단이다. 이와 비교할 때 기본소득은 개별적 기여와 무관하게 또한 필요에 대한 심사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된다. 이와 같은 현금 이전cash transfer의 정당성은 어느 누구의 노동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유부는 사적으로 전유될 수 없으며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이미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기의 사상가인 토마스 페인Thomas Paine과 토마스 스펜스Thomas Spence에게서 토지 소유권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싹텄고, 오늘날에는 디지털 자본주의, 인지자본주의, 인공지능 등 현대적 배경 속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토지, 생태환경, 축적된 지식, 금융, 네트워크 등 공유재의 확대에 관한 현대적인 논의는 자신의 노동에 근거한 소득이라는 이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적 전유된 공유부를 정치공동체가 환수하여 평등하게 분배하는 제도, 곧 기본소득 배당에 대해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공유부에 대해서는 누구나 배당받을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사유재산제도의 법적 형식에 의해 사적으로 전유되는 공유부를 환수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 것은 정치공동체의 의무가 된다. 사유재산제도를 유지하면서 공유부를 환수할 수 있는 수단은 조세다. 그런데 공유부 배당을 위한 조세는 국가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고 전액을 평등하게 배당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재정충용을 위한 일반 조세와 구별된다. *공유부 배당론의 의의는 단지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즉 공유부 배당의 관점은 20세기 복지국가의 이전 지출과 기본소득의 관계를 사고할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공유부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은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와 전혀 다른 원리에 기초해 있다. 기본소득이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를 대체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수준의 기본소득이 도입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필요성은 매우 줄어들 것이고 전면적인 대체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수준이나 생계 수준 정도의 기본소득 도입으로는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가 대체되지 않을 것이며 대체되어야 할 어떠한 합목적성도 없다. 도입 단계에서 기본소득은 사회보험 및 공공부조와 병립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혼합 복지 모델에서 기본소득, 사회보험, 공공부조는 각각 공유부의 평등한 배당의 원리, 기여의 원리, 필요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현금 급여로서 서로 다른 문제 영역에 대한 복합적인 해결 방식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공유부 배당의 관점에서 기본소득과 20세기 복지국가의 이전 지출들의 차별성을 살펴보고, 나아가 공유부 배당론의 논변 구조를 사유재산권 및 시장 노동과의 관계 속에서 분명히 하고 이에 근거하여 기본소득론의 사회상을 그려본다.

* 공유부 배당을 위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조세에서는 재정 환상이 제거된다. 거둔 액수 그대로 1/n로 분배되게 때문에 누구나 손익에 대해 명료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오직 재분배만을 위한 조세라는 점에서 목적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준조세로서 재분배 기여금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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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호(2017년5월)] |시평| 가짜 기본소득과 진짜 기본소득운동 / 김태호

■ 시평

가짜 기본소득과 진짜 기본소득운동

/ 김태호 박종철출판사 대표

기본소득이 이번 대선에서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만한 징후는 적지 않았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훨씬 이전인 2016년 6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김세연, 국민의당 김성식 등의 의원들이 모인 ‘어젠다 2050’에서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기 대선이 확실시될 즈음에는 기본소득과 대선을 연계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잠룡들, ‘기본소득제’ 깃발 … 복지·경제 공약 화두 되나」(『연합뉴스』2016년 12월 25일),「대선 주자들 ‘기본소득’ 도입 논의 본격화」( 『서울경제』 2016년 12월 25일),「대선 주자들 너도 나도‘ 기본소득제’」( 『한국경제』 2016년 12월 26일),「이번 대선 최대 이슈는 기본소득」(『한겨레21』 제1145호, 2017년 1월 10일) 등등. 심지어 한 경제 전문지는 2017년 4월이 되어도「‘재벌 회장에게 용돈?’ 오명 벗은 기본소득, 본선에선 어떤 활약할까」(『머니투데이』 4월 12일)라는 기사를 실었다.

모두 알다시피 기본소득은 대선에서 의미 있는 논점이 아니었다. 청년수당을 도입해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기본소득에 지지를 표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 김부겸 의원은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미 성남시에서 청년배당을 실시하던 이재명 시장은 수급 범위를 넓혀 기본소득을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다. 김종인, 정운찬 등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비쳤던 몇몇 인물은 막상 후보 등록기간이 되자 생각을 바꿔 출마를 포기했다. 2016년 가을 국회 비교섭 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본소득 도입 의사를 밝혔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만 유일하게 ‘농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들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물론 기본소득 없는 대선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그동안 한국에서 기본소득운동에 앞장섰던 세력에게 있을 것이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동당과 녹색당은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또는 못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나 기본소득공동행동(준)도 대선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링 위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펼치지 못했다. 2016년 하반기와 2017년 상반기에 많은 토론회와 ‘정책 배틀’이 진행되어 기본소득과 그 밖의 복지정책이 비교되면서 논의가 진행되긴 했지만, 후보의 입을 통해 기본소득이 쟁점이 되지는 못했다.

‘가짜’ 기본소득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공범들이 저지른 일이 폭로되고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마침내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관계자들의 재판이 진행되고 예정보다 일찍 대통령 선거에 돌입한 내내,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예전 같으면 “유언비어”라 불렀을 그런 “가짜 뉴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 의해 생산돼 어떻게 유통되며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다룬 보도를 놓고 또 진짜이네 가짜이네 다투고 있고, 아예 어떤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루는 것이 뉴스의 한 꼭지가 되기도 했다.

이 글도 “팩트 체크”에서 시작하기로 하겠다. 먼저 2017년 2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상이 공동대표의 칼럼「지금 기본소득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를 보자.『 좌파』 2017년 3월호 「책 머리에」가 이미 다룬 바 있는 글이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탄핵과 대선 국면을 맞아 기본소득 제도가 세간의 이슈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 전부가 가짜다.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의도했던 것이겠지만, 다수의 언론들도 기본소득제도의 본질과 핵심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외국 사례들을 마치 기본소득인 양 잘못 보도하는 많은 오류를 저질렀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기본소득의 핵심과 본질에서 벗어난 가짜 기본소득으로 정치사회적 시민권을 얻으려 한다는 의심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탄핵과 대선 국면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등장한 것 “거의 전부가 가짜”라는 이상이 공동대표의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씩 보기로 하자.

김부겸 의원은 21명의 발의자를 대표해 2017년 1월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청년기본소득법 발의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수급권자를 19세 이상 29세 이하인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로 정하고 있다. 이때 비정규직 취업자란「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간제, 단시간근로자, 파견근로자를 말하며, 실업자란 “실업을 신고하고 구직급여 수급자격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 “청년기본소득액”은 “청년 한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월 생활비용”에서 ‘법정 시간급 최저임금을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유급휴가를 포함한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을 뺀 액수다. 대략 20만원이며,146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 법안은 그 이름이 어떠하든 기본소득이라 할 수 없다.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거나 구직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수급권을 얻기 때문이다. 노동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지급된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물론 김부겸 의원 등이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막을 길은 없다. 그 명칭에 대한 저작권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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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_김태호_가짜기본소득진짜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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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호(2017년5월)] |시평| 2017년 대통령 선거: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시작 / 안효상

■ 시평

2017년 대통령 선거: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시작

/ 안효상 편집위원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선거란 역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구조화한 힘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탄핵 덕분에 ‘장미 대선’이라는 별칭이 붙을 수 있었던 5월에 선거가 열린 것은‘ 민주적인 정부’의 재수립에 어떤 상징적인 분위기를 씌우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가 6·10 항쟁 30주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시대를 낳은 흐름

이번 선거를 구조화한 그 힘 혹은 프레임의 표면에 있는 잔물결은 당연하게도 박근혜 정권의 교체에 대한 열망이었다.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사태는 이념적 성향과 상관없이 보통사람들에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태였다. 80퍼센트 내외가 정권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태극기 집회’를 통해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결집하긴 했지만 한국 사회의 주류 심성이 이렇게 주변화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일종의 반증이다.

물론 반대를 표명하는 것과 거리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를 알기 위해 우리는 잔물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에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분노, 요구, 열망이 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참담함이다. 물론 세월호 자체도 마치 하나의 소우주처럼 우리 사회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전체로서의 세월호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현대 국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주제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흐르면서 여러 소주제를 만들어낸다. 소주제들은 각자가 피부로 느끼는 것이기에 반복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언급할 필요는 있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경제적 불안정이다. 일자리, 소득, (가계)부채 등의 말로 검출하는 대다수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지난 달 실업률이 17년만에 최대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근거 자료의 한계가 있지만 중위 소득이 1천만원도 안 된다는 연구는 일종의 스캔들일 뿐이다. 가계부채가 GDP 대비 90퍼센트에 육박하는 1,350조원이라는 사실은 그저 막막함을 더해 줄 뿐이다. 이런 현실의 무거움 속에서 경제적 불안정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불안정의 ‘추세’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흐름은 시장 활동에 강력한 경쟁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런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변경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흐름과 교차하는 것이 제4차 산업혁명의 개시다. 이런 흐름의 교차 속에서 점점 더 일자리의 양적 증가라는 전망은 어두워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현재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있다. 다시 말해 더 적은 노동시간과 더 많은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운동의 방향을 여기에 맞추자는 것이다.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정치적 배치와 대중적 심성의 변화를 함께 요구하는 일이기에 이에 관한 전략 또한 필요한 일이다.

경제적 불안정과 관련해서 당장 눈에 띄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 및 결정 방식 변경에 대한 요구다. 어찌되었든 오늘날 고용노동은 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에게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다. 따라서 일자리가 주는 다른 의미를 제외한다면, 적절한 시간 동안 일할 경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다. 게다가 다양한 서비스업의 확대 속에서 이른바 ‘맥잡 Mac Job’이라고 부르는 일자리가 늘어가고 있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제대로 된 일자리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 낮은 임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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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_안효상_새로운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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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호(2017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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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탄핵 이후

대통령이 탄핵되고 청와대를 비웠다고 해서 사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당장의 관심은 박근혜 씨를 구속하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다.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에는 이미 결말이 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라는 대중의 어마어마한 진출 속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분명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과 측근의 국정 농단이라는 사태가 있고, 이것이 대중적으로 폭로되었으며, 여기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이는 하야 혹은 탄핵이라는 요구로 나아갔다. 물론 하야와 탄핵은 다른 궤적을 낳았을 것이다. 후자는 기성의 헌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전자는 정치적 지위로서 법적 질서의 균열 혹은 그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이후의 절차도 그만큼 다르다.read more

[제47호(2017년4월)] |시평| 박근혜 탄핵을 돌아본다 / 김찬휘

[제47호(2017년4월)] |인터뷰| “세월호특조위가 무너지자 촛불이 오다” ― 권영빈 전 세월호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 인터뷰 / 오준호

[제47호(2017년4월)] |국제| 트럼프노믹스, 신자유주의의 종말인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인가? / 조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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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호(2017년4월)] |인터뷰| “세월호특조위가 무너지자 촛불이 오다” / 오준호

■ 인터뷰

“세월호특조위가 무너지자 촛불이 오다”
― 권영빈 전 세월호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 인터뷰

 / 오준호 논픽션 작가,『 세월호를 기록하다』의 저자

1,073일.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선체 곳곳이 녹슬고 부서졌지만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희생자 가족과 국민은 미수습자들이 저 배 안에 그대로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사의 진상을 확인할 열쇠가 저 배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결같다. 미수습자 수색과 선체 조사는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가 맡는다. 상식적으로는, 참사 후 350만 명이 서명하고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에 따라 만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인양 후 조사를 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9월 30일에 해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촛불집회는 결국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냈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핵심 요구로 끌어올렸다. 박근혜가 탄핵된 지금, 세월호와 관련된 진상 규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월 21일, 특조위에서 진상규명소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빈 변호사를 만났다. 그에게 지난 특조위 활동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권영빈 변호사는 인터뷰 이후에 선체조사위원회 가족 추천 위원으로 확정되었다.

201704_47_in3주기에 맞춰 출간하려 한다. 제목은 『머나먼 세월호 ― 세월호 특조위와 함께한 시간』으로 정했다. 책은 특조위 활동 전반에 관한 기록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세월호 진상 조사 결과를 담은 것은 아니다. 특조위는 전원위원회 의결을 통해 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는데, 강제로 해산당하는 바람에 완료한 조사가 많지 않다. 우리는 해산당하는 바람에 마무리를 못했다. 특조위 활동을 볼 수 있는 홈페이지마저 정부가 없애버렸다. 특조위 활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위원장과 상임위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진상규명소위원장으로서 내 경험을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청문회와 실지 조사 등 언제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고 소회를 덧붙였다. 특조위가 어떻게 방해를 받았는지도 한눈에 알 수 있을거다.

* 쓰다가 여러 번 감정이 격해졌겠다.

2015년 1월 16일,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의원이 “특조위는 세금 도둑”이라고 했다. 기억을 되살리다가 당시 내 느낌까지 되살아나면서 화가 났다. 그때 특조위는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그해 3월에 정부는 특조위의 손발을 묶는 엉터리 「시행령」을 예고했고, 이에 항의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위원장과 상임위원들이 일주일간 농성했다. 위원장은 장관급이고 상임위원은 차관급이다. 장관급 기관장이 농성한 것이다. 그 상황을 떠올리니 ‘다시는이런 건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 특조위를 시작할 때 정부가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 못했나?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이야.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2015년 1월 1일부터 특조위 활동이 시작되었다면서 활동 기간을 산정했다. (「특별법」상 특조위 활동 기간은 6개월 연장을 포함해 최장 1년 6개월이었다. 활동 기간이 끝나면 최소 인력으로 보고서 작성에 3개월을 쓸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나? 위원회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위원장이 대통령 면담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완전히 무시했다. 위원장이 해수부장관을 만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조위는 국회에 「특별법」 개정을 요청했다. 야당이요구했지만 여당이 꿈쩍하지 않았다. 특조위는 작년 7월부터 강제종료를 막으려고 위원과 조사관들이 릴레이로 단식했다. 야당 대표까지 지지 방문을 왔지만 결국 못 막았다. 정부의 이런 방해에 특조위 혼자서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법에 따라 「시행령」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직원을 몇 명 뽑고 부서를 어떻게 만들지 결정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는「시행령」을 일방적으로 내놓았다. 정부가 이렇게 나오니 특조위는 진상 규명 활동에 쏟을 힘을 특조위 존립과 운영에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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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_오준호_세월호 특조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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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호(2017년4월)] |시평| 박근혜 탄핵을 돌아본다 / 김찬휘

■ 시평

박근혜 탄핵을 돌아본다

/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1. 탄핵의 숨은 공신?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선언하면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탄핵되었다. 작년 10월 29일에 시작된 촛불집회가 드디어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연인원 1,000만 이상의 시민이 박근혜 탄핵의 일등 공신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탄핵의 숨은 3대 공신이 있다.

일단‘ 이쏘공’(이화여대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정운호.

작년 7월에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카오에서 수백억원 대의 상습적 도박을 해 온 네이처 리퍼블릭의 정운호가 최유정 변호사에게 착수금 반환을 요구하며 폭행을 가했을 때,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우병우란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리게 될 것이라 누가 예상했을까?

그런데 이 둘보다 훨씬 강력한 숨은 공신이 있다. 이 사태 전체를 시작한 집단, 바로『 조선일보』.

모든 것의 시작은 7월 18일 월요일 『조선일보』 1면이었다. 넥슨에서 공짜 주식을 받은 진경준 검사 사건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조선일보』는 뉴스 주목도가 가장 높은 월요일, 제일 잘 보이는 1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 넥슨, 5년 전 1,326억원에 사 줬다”라는 기사를 낸다. 7월 26일 TV조선은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이라는 보도를, 8월 2일에는 K스포츠 재단380억원에 관한 보도를, 8월 12일에는 청와대가 두 재단과 연루되어 있다는 보도를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연일 계속된『 조선일보』의‘ 청와대 때리기’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조선일보』의 기대와 달랐다. 8월 21일 청와대 관계자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8월 22일에는 검찰이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유력 일간지’ 고위 간부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언론에 흘린다. 이어 8월 29일, 친박의 돌격대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조선일보』의 송희영 주필이 호화 요트 접대를 받았
다”라고 공개한다. 결국 송희영 주필은 사퇴하고 『조선일보』는 잠잠해졌다.

그러나 포기할『 조선일보』가 아니었다. 특히 2017년은 종편 재승인 심사가 있는 해이기에, 거기서 포기한다면 TV조선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정보를『 한겨레』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9월 20일『 한겨레』는 재단 미르와 K스포츠의 실세가 최순실이라고 보도한다. 이제 촛불집회의 모든 재료가 준비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박근혜 탄핵으로 귀결된 사건 전체의 시발점은 『조선일보』와 박근혜파의 갈등으로 표출된 지배층 내부의 분열이었다는 것.

2. 지배계급의 작은 균열은 억눌려 온 대중의 분노를 터져 나오게 하고 대중의 역동성은 지배층의 애초 구도를 뛰어넘어 버린다는 것.

3. 촛불집회라는 대중운동의 폭발로 인해 ‘정권 재창출’이라는 지배계급의 원래 의도는 좌절되었지만, ‘박근혜 무력화’라는 일차적 목적은‘ 박근혜 탄핵’이란 형식으로 달성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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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_김찬휘_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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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호(2017년4월)] |국제| 트럼프노믹스, 신자유주의의 종말인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인가? / 조혜경

■ 국제

트럼프노믹스, 신자유주의의 종말인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인가?

/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저를 보이고 있는 데 반해, 미국 증시에서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 국민의 평가와 시장의 평가가 완전히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증시의 호황세는 미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는 낙관적인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입장에서 트럼프는 최고의 대통령인 셈이다.

트럼프노믹스란?

왜 시장은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환호하는 것일까? 우선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경제 공약으로 네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는 전 방위적 감세, 둘째는 규제 완화, 셋째는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 마지막으로 보호무역주의. 대내외적으로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제외하고 앞의 세 가지 정책만 놓고 보면, 기업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정책 조합이다. 대대적인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선물 보따리에 더해 정부가 돈을 왕창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하니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횡재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 트럼프노믹스의 효과로 거의 모든 산업이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인프라에 1조달러(2015년 한국 GDP가 1조3775억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액수다)를 투자하는 트럼프 식 뉴딜 정책, 방위비 증액, 화석연료를 부활하는 에너지 정책 등 대표적인 경제 공약들이 실현된다면, 광업 및 에너지 업종, 군수산업, 건설업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다. 금융업도 이중의 혜택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새로 도입된 규제들이 폐지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중 금리가 상승하여 은행들의 수익성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스티븐 느무신 재무부 장관이 골드만 삭스와 헤지 펀드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 출신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어떨까? 트럼프의 통상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는 “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이라는 슬로건, 즉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경세’를 제시했다. 완제품이든 부품이든 수입품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든 다른 나라 기업이든 인건비가 싼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에서 판매하면 국경세라는 철퇴를 맞게 된다. 그 대신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해서 트럼프가 약속한 감세와 규제 완화의 해택을 누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트럼프의 예상대로 국경세가 효과를 발휘한다면 미국에서 거의 사라진 제조업이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노믹스가 광업에서 건설업,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실물 경기를 확실히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고 여기에 업종을 가리지 않는 법인세 인하(대선 공약은 현행 35%의 법인세 최고 세율을 15% 단일세율로 인하)라는 특별 선물까지 보태면, 기업들의 세전, 세후 이익 모두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미국 증시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미국 수출에 의존했던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미국 경제만큼은 호황을 기대해도 좋다는 판단과 함께 기업의 순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에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증시에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파격적인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게 되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법도 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일부 경제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국가재정 위기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경고의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투자자와 금융시장은 트럼프노믹스로 인한 재정 위기에 대한 걱정보다 트럼프노믹스가 가져올 기업 이익 증가와 경제 부양 효과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경기 부양책을 통해 기업의 세전 이익의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 정책이 성공하여 신규 세수가 들어오면, 대대적인 감세에도 불구하고 세수가 전체적으로 증가하여 재정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깔려 있는 듯하다. 트럼프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는 비판과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해 투자자와 금융시장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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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_조혜경_트럼프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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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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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탄핵되고 청와대를 비웠다고 해서 사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당장의 관심은 박근혜 씨를 구속하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다.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에는 이미 결말이 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라는 대중의 어마어마한 진출 속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분명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과 측근의 국정 농단이라는 사태가 있고, 이것이 대중적으로 폭로되었으며, 여기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이는 하야 혹은 탄핵이라는 요구로 나아갔다. 물론 하야와 탄핵은 다른 궤적을 낳았을 것이다. 후자는 기성의 헌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전자는 정치적 지위로서 법적 질서의 균열 혹은 그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이후의 절차도 그만큼 다르다. 탄핵은 기존 절차를 고스란히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질서의 변화도 없이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하야였다면 흔히 말하는 ‘거국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것이고, 이는 좀 더 개방적인 것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꼭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것 또한 세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니 말이다. 촛불집회로 모인 대중의 힘이 하야나 탄핵 이상의 것으로도 발휘됐을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태의 먼 원인은 최소한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되는,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다. 더 밑바닥에는 대중의 물질적 불만이 놓여있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계기가 배신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할지라도 다양한 대중의 물질적 불만이 최소한 촛불집회 국면에서는 억제되었다는, 혹은 억제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번 사태의 한 가지 비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분히 돌아보면 다 아는 것이지만, 이번 사태는 보수파의 일종의 ‘보수 혁명’ 시도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은 이런 시도에 맞섬으로써 일종의 전前혁명을 수행한 셈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폭로에서 시작되었고, 이들의 구상에 따라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언론 분파의 합세가 있었다. 물론 음모론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치세력의 구상이 그 자체로 관철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이른바 상호작용 속에서 의도를 벗어나고 통제를 벗어난다. 그게 근대 대중 정치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작년 10월말 이후의 정치적 풍경은 최소한의 변화로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는 힘과 기성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넘어서려는 힘 사이의 충돌과 상호작용 속에서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탄핵이라는 헌법 질서의 수호로 일단락되었다. 박근혜 씨의 구속과 처벌은 이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인양은 다시금 우리에게 미해결의 과제가 있음을 아프게 보여 주고 있다.

탄핵으로 일단락된 이번 사태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가진 양면성을 보여 준다. 우리의 민주주의 헌법과 가치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국정 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거리로 나오도록 만들었다. 어쨌거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를 수용하고 거기에 법적 권위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경계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대중의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의해 말 그대로 억제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폭발하려면 현재로서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계기는 양방향에서 올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로 형성될 정치적 힘의 균형을 보수적인 쪽으로 돌리려는 이른바 냉전 보수 세력의 시도다. 다른 하나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쉽게 바뀌지 않을,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나빠질 대중의 삶이다. 이 속에서 한편으로 한국 정치에서 좌파가 처한 딜레마 상황이 다시 연출될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민중의 대변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황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는 전적으로 힘에 달려 있을 텐데, 여기서도 문제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기성 질서를 보호하는 힘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힘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또 다른 사태를 낳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이중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제도로서의 헌법을 수정하는 작업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헌은 정치 일정에 올라 있으며, 그 누구보다 냉전 보수 세력의 요구가 크다는 점에서 일정한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여기에 이른바 민중 세력이 어떤 요구를 가지고 들어설 것인가 혹은 의미 있는 행동이 가능한가가 문제다.

다른 하나는 이런 정치과정과 민중의 힘이 병행하고 교차하는 과정에서 기성의 정치계급을 넘어서는 정치세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다. 물론 이때 새로운 정치세력은 꼭 기성 정당 질서 외부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여러 힘은 기존 정당체제 외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거의 봉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용적으로 그런 세력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제도는 우리에게 언제나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중의 과제를 교차하는 게 아마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과정을 규제하는 법률의 개정 문제일 것이다. 이런 법률은 그 자체로는 그 누구의 요구도 대변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종류의 규제에 관한 것이다. 과연 여기로 대중의 힘을 향하게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아마 여기서 열쇠는 이른바 정권 교체라는 것으로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가 그 내부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편집위원회를 대신하여
안효상

 

*** 이 글은 제47호(2017년4월호) <책 머리에>이다.

47호_책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