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2018

[제48호(2017년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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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시대 속의 좌파

박근혜 정권 탄생 직후에 만들어진 이 잡지가 “좌파”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은 이번으로 마지막이다. 문재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제호를 바꾸는 건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이라는 면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길게 보면 세계사적으로 좌파가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동쪽의 좌파는 꽤 오래 전에 자기 약속을 저버렸고, 서쪽의 좌파는 자기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1968년은 이런 좌파에 대한 매서운 채찍이었다. 그런 좌파가 유럽에서 부활한 것은 이미 좌파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을 들고 나온 다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좌파 왼쪽의 좌파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당장 의미 있는 세력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Read more

201, 2018

[제47호(2017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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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탄핵 이후

대통령이 탄핵되고 청와대를 비웠다고 해서 사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당장의 관심은 박근혜 씨를 구속하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다.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에는 이미 결말이 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라는 대중의 어마어마한 진출 속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분명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과 측근의 국정 농단이라는 사태가 있고, 이것이 대중적으로 폭로되었으며, 여기에 대한 분노가 있다. 이는 하야 혹은 탄핵이라는 요구로 나아갔다. 물론 하야와 탄핵은 다른 궤적을 낳았을 것이다. 후자는 기성의 헌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전자는 정치적 지위로서 법적 질서의 균열 혹은 그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이후의 절차도 그만큼 다르다.read more

[제47호(2017년4월)] |시평| 박근혜 탄핵을 돌아본다 / 김찬휘

[제47호(2017년4월)] |인터뷰| “세월호특조위가 무너지자 촛불이 오다” ― 권영빈 전 세월호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 인터뷰 / 오준호

[제47호(2017년4월)] |국제| 트럼프노믹스, 신자유주의의 종말인가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인가? / 조혜경

2605, 2017

[제46호(2017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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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아이디어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조용하면서도 격렬한 정치적 소용돌이는 한편으로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짧은 시간과 집중성으로 인해 어떤 변화인지를 묻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 공간의 개방으로 인한 목소리의 분출, 그리고 대중민주주의의 메커니즘 속에서 그 목소리에 응답하려는 정치적 호소가 어느 정도는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곧이어 벌어질 대통령 선거가 불가피하게 ‘승리를 위한 정렬’로 나아갈 것이고 그럴 경우 우리에게는 전망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다.read more

[제46호(2017년3월)] |시평| 대선 국면의 기본소득 논쟁에 부쳐 / 금민

[제46호(2017년3월)] |에쎄| ‘선한 의지’의 결코 선하지 않은 의지 / 박기순

[제46호(2017년3월)] |노동| 민주노총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다 / 정광진

[제46호(2017년3월)] |새로운 출발을 맞으며|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노동자운동의 전망을 열다 / 구교현

2605, 2017

[제45호(2017년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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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촛불시위 : 첫 번째 국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재판과 특검의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하야 혹은 탄핵을 직접적인 목표로 한 촛불시위의 첫 번째 국면은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침 연말연시라는 자연적, 인간적 시간의 매듭 속에서 이 국면의 동학과 성격을 살펴보는 것은 이후 국면을 바라보기 위해서 필요한 일로 보인다.

특정한 입장에서 바라볼 때 촛불시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좌파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꼭 전통적이고 실정적인 의미에서의 좌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퇴진행동’의 주요 참가 단체로 민주노총이 있고, 또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일 때 당연히 거기에 참가할 뿐만 아니라 행진 시에 ‘선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좌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투쟁의 형식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투쟁의 방향과 목표 혹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별다른 목소리도 없고, 특별히 발언권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read more

[제45호(2017년1~2월)] |시평| 2016년 촛불과 대한민국헌법 / 김태호

[제45호(2017년1~2월)] |역사|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지나간 시대 / 안효상

[제45호(2017년1~2월)] |국제|평화는 왔지만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네 / 최기원

[제45호(2017년1~2월)] |현장통신|“띄어쓰기 없는 삶에 쉼표를 찍어 봅시다” / 김재섭

2403, 2017

[제44호(2016년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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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을 보내면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죽음과 함께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정위원회가 “위대한 전통 안에서 미국 음악의 새로운 시적 표현new poetic expression의 창조였다”라는 선정 이유를 밝혔지만, ‘문학의 경계’를 중심으로 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의 죽음은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위대한 혁명가/독재자의 이미지는 20세기의 혁명과 사회주의를 둘러싼 논의의 일부를 구성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밥 딜런의 수상 소식을 들으며, 그리고 곧 이어진 촛불시위에 함께하며 많은 사람은 그의 세 번째 앨범인《’시대가 변하고 있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 들어 있는 같은 제목의 노래를 떠올린다. 한 일간지에 실린 신형철 교수의 번역을 그대로 인용하면 “사람들아 여기 모여라/ 그대가 어디를 떠돌고 있든/ 인정하라 그대 주위의 물이 차올랐다는 것을.” 이렇게 시작한 노래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선, 그것이 그어지고/ 저주, 그것이 내려진다/ 지금 느린 자는/ 훗날 빠른 자이리/ 지금 이 현재가/ 훗날 과거가 되듯이/ 질서는 급격히 쇠락해가고/ 지금 맨 앞인 자가 훗날 맨 끝인 자가 되리라/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read more

[제44호(2016년12월)] |특집|광장민주주의의 귀환, 87년 체제의 축제, 이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 금민

[제44호(2016년12월)] |시평| 최순실에게‘ 삥 뜯긴’ 재벌, 피해자인가? / 조혜경

[제44호(2016년12월)] |기획| 미국 대선과 트럼프 당선의 배경 / 김찬휘

[제44호(2016년12월)] |기획|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 김보화

903, 2017

[제43호(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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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포스트87년 체제를 위하여

150년도 더 전에 칼 맑스는 “독일에서 종교 비판은 끝났다”고 했지만 그 이후 맑스주의는 ‘이데올로기론의 공백’으로 고통 받았다. 이 공백을 때마다 메운 것은 언제나 정치의 혁신이었는데, 이는 정치의 주동성의 발견과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설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론의 공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효과를 확인한 것은 그런 대로 성과라 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87년 체제의 한계’ 운운하면서 개헌론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한계로 말하는 것은 권력 구조, 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 맞춰지고 있다. 5년이라는 임기 제한,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것으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5년 단임제는 책임 있는 정치를 어렵게 하고 대통령의 제왕적 성격은 권력의 행사가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비뚤어진 권력 행사가 가능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저 대답은 인격personality에 맞추어진다. 그러니 이를 알기 위해 문학비평의 다양한 접근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권력자에 대한 정신분석이 행해지고 생애사가 조명된다. 누구에게는 CEO로서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찾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부모를 잃은 불행했던 젊은 시절과 그 공백을 메워 주었을 누군가의 사랑 (과 영향력)이 거론된다. 그럴듯한 분석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이런 인물을 대의제 하에서 대중이 지지해서 그 자리까지 올린 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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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호(16년 11월호)] |초점| 편의점 알바가 단체교섭으로 가는 길 / 최기원

[제43호(16년 11월호)] |논단| 시간의 재분배와 젠더평등 / 금민

[제43호(16년 11월호)] |시평| <청년들, 청년배당에 답하다!> 토론회를 마치고 / 스밀라

[제43호(16년 11월호)] |서양철학 산책|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 임영근

 

712, 2016

[제42호(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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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국 백남기 님이 돌아가셨다. 수많은 불행 속에서도 다행인 것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 때문인지, 70세 생일을 넘기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약간의 위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것에서나마 위로를 찾는 이유는 그저 슬퍼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와 의지 때문이다.

백남기 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너무나 강력한 물대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게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즉자적이긴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의 감정이 솟구치는 이유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뻔뻔스럽고 무책임한, 더 나아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찰과 정부 때문이다. 사태의 원인이 구조적인 것이든 혹은 일탈적인 것이든 간에 이들이 보이는 태도가 사람이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에는 당연히 도덕적 분노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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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호(16년 10월호)] |삶의 소리| 구치소 체험기 / 우람

[제42호(16년 10월호)] |시론| 중국‘ 사회주의’의 성격 규명: 개혁 이전과 이 후의 중국 경제의 체제적 성격 (1) / 유승경

[제42호(16년 10월호)] |시평| 청년과 희망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힘겨루기 / 김태호

[제42호(16년 10월호)] |영화를 말하다| 《터널》, 한 편의 재난 영화가 끝날 때 / 강승

 

711, 2016

[제41호(16년 9월호)]

41호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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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혁신 혹은 버리기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생물에 비유하는 것은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란 것이 분할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로부터 나오는 반향이 있을 때에만 실제로 수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디를 보아도 역동성과 수행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병우 일병 구하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말해 주듯이 각종 비리 의혹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이제 수사까지 착수한 인물을 기어코 청와대에서 내보내지 않으려 하는 권력자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언론과 평론가 들은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긴 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거나 ‘밀리면 안 된다’라는 생각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틀린 분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이다.read more

[제41호(16년 9월호)] |특집| 푸른하늘을 향한 645번째 희망의 종이학 / 박기홍

[제41호(16년 9월호)] |시사| 중국과 미국의 전쟁(!) 속에서 사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 안효상

[제41호(16년 9월호)] |에쎄| 증오 사회와 《부산행》 / 박기순

[제41호(16년 9월호)] |서양철학산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 / 임영근

 

2510, 2016

[제40호(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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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를 마치고

이번 호에는 지난 7월 초에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와 관련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라 는 주제로 7월 7일에서 9일 사이에 서울의 서강대에서 열린 제16차 대회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었다.

그런 역사적 의의가 큰 만큼 우려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얼마나 큰 관심을 받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것인가? 또 하나의 걱정은 과연 대회를 무탈하게, 더 나아가 어떤 성과를 내면서 잘 마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몇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read more

[제40호(16년 8월호)] |초점|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 최기원

[제40호(16년 8월호)] |특집| 기본소득은 바람에 실려 퍼져 간다 / 오준호

[제40호(16년 8월호)] |특집| 기본소득은 왜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적실성이 있는가? / 필립 판 파레이스

[제40호(16년 8월호)] |국제| 영국민의 투표 성향으로 본 브렉시트의 의미 / 유승경

2410, 2016

[제39호(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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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기본소득의 시간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고 하지만 인간이 매우 보수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싸움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이 언제나 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플롯은 대개 같았다. 누구의 말처럼 처음에 새로운 생각은 언제나 미친 소리나 허튼소리로 취급당했다. 그 다음은 예상할 수 있듯이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지’ 정도였다. 그 다음은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꼭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지금 여기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비슷한 궤적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다. 거의 십 년 전쯤 이 아이디어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정말 소수였다. 그러니 논란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2016년 봄을 지나면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제법 인기 있는 케이블 방송의, 그래도 토론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야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기본소득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read more

[제39호(16년 7월호)]|기본소득|공화주의와 기본소득 / 다니엘 라벤토스

[제39호(16년 7월호)]|기본소득|독일 좌파당의 현황과 카티아 키핑 공동대표에 대하여 / 금민

[제39호(16년 7월호)] 여섯 번째 이야기: 지하철 기관사 / 허영구